작성일 : 04-12-17 16:44
[한겨례 신문] 평화,그 멀고먼 길-미황사 ①
 글쓴이 : 곽병찬
조회 : 1,987  
산사에서 보낸 편지(9)-평화,그 멀고먼 길-미황사 ①

아름다운 절, 미황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서울서 대여섯 시간이면 되리라 믿고 오후 4시쯤 출발했지만, 첫날밤은 미황사 먼 발치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가는 길은 많이도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빠져나가는 데만 두어 시간 걸렸습니다. 게다가 군산쯤이었을까요.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차는 아슬아슬하게 거북이 걸음으로 가야했습니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목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답니다. 목포서 한 시간 반쯤 걸린다니, 미황사로 강행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스님께선 오겠다는 이를 기다리겠죠. 하지만 그 늦은 시간에 소란을 피울 염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영산강방조제를 건너 대불공단을 지나 해남 쪽으로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절집에서의 그윽한 하룻밤은 포기했지만, 서늘한 아침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남도의 늦가을 들판을 달리는 기분은 특별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구릉지대는 상기도 배추며 무며 시퍼런 푸성귀를 가득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밭이랑마다 여지없이 갈대꽃이 만발한 채 가볍게 몸을 뒤척이고 있었습니다. 솜사탕만한 하얀 꽃술들이 일제히 펼치는 율동은 장관이었습니다. 서투른 그러나 생명력 가득한 아이들의 매스게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헐벗은 구릉지대 곳곳에 한 무리로 피어난 갈대꽃들의 하얀 군무와 꽃술 위에서 부서지는 아침햇살을 말입니다. 운동회 날 아이들의 함성을 연상하면 쉽게 그 모습을 상상할 것 같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평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땅에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내용의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군사시설 설치 반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알아본즉 국방부는 산이면 일대 90여만평에 해군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당연히 이를 막겠다는 결의였습니다.

군 쪽에선 산이면에 들어설 시설이 단순한 해군 통신시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반강제로 끌어들여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지는 시설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은 물론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이 계획에 내심 반대하고는 있지만, 서슬퍼런 미국의 위세에 눌려 이런 뜻을 제대로 밝히지를 못해 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끝내 우리를 미국이 구상하는 미사일방어 구상 속에 우리를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몰라도 한반도 땅 끝 마을까지도 전쟁과 살육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평화를 저주하고 평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저 갈꽃보다 여린 사람들의 작은 평화마저 허용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 겁니다. 동네 전체가 군사 훈련장인 곳에서 살던 이 아이들은 훈련 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었으니까요. 그 훈련이란 게 무엇일까요. 사람을, 그것도 우리 동포를 죽이는 훈련입니다. 훈련과 실전을 구분하지 않는 그들은 이 아이들의 꽃봉오리 같은 아름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뭉게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덜덜 떨리는 일입니까. 내게도 꼭 그만한 딸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의 푸성귀보다 싱싱한 젊음과 새처럼 가벼운 꿈과, 아 그 재잘대는 소리만 생각해도 아찔해집니다.

그 기막힌 죽음 앞에선, 책임자 처벌 소파 개정 등 마땅한 요청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이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혔는데,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말입니까.

아름다운 절집 미황사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길고도 험했습니다. 간밤에 얼마나 눈보라가 몰아쳤던가요. 풍광은 아름답되 마음은 서럽고, 바람은 가볍되 가슴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들은 한없이 조용하지만 언제 끓어 넘칠지 모르는 긴장으로 가득했습니다. 들에 가득한 풀들은 그 작은 평화를 온전히 누리고 있지만, 호시탐탐 그것을 깨버리려는 자들의 음모가 그곳에 발톱을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땀을 나누어 주고, 죽어선 뼈 한 조각까지 그가 키운 사람에게 보시하고 떠나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평온을 잃지 않는 게 소입니다. 그 아름다운 소가 평화롭게 누워있던 자리에 지었다는 미황사는 당연히 이 땅의 평화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나는 살육과 죽음과 눈물과 비탄을 떠올리고 있으니 참으로 무지한 놈입니다.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여지껏 전쟁 중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그 비열한 음모투성이인 전쟁을 하고 있는 게 말입니다.

미황사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답고 평화롭기에 한반도의 그 불안한 현실을 극명한 대비로 보여줬습니다. 산문을 들어서면 당신은 그 아픈 대조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겁니다. 거긴 언제나 아이들의 천진한 평화가 철철 넘치고 있으니까요.

문화부장 곽병찬chankb@hani.co.kr

출처: 인터넷한겨레

# 2박 3일 일정으로 직원들과 함께 단합대회를 겸해 송광사 "송사모" 12월 법회를 참석했습니다. 송광사에서 일박을 하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백양사에 들려 하룻밤을 보내면서 직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업무를 시작하면서 펼쳔 본 소식에 미황사 관련 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144 587 66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