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37
마실가기
 글쓴이 : 금강
조회 : 3,446  

마실가기

금강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날 탁발할 시간이 되자. 부처님께서 가사를 입은 뒤 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 집 한 집 다니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을 마친 부처님께서는 사원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은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가 시봉을 하기 전 60세 되던 해까지 대중스님들과 함께 이와 같은 모습으로 탁발을 하며 세상 사람들을 만나셨다고 한다. 부처님에게 탁발은 단순히 공양을 빌어오는 의미가 아니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옛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거기간 한 철(3개월)동안 공부를 하러 절에 들어가려면 석달 동안 먹을 자기 양식을 탁발해 갔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하러 대중선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스님들은 마을에서 양식을 구하지만 한 편으로 사람들의 고뇌를 직접 대하며 공부에 대한 발심을 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거를 위한 마음 준비의 시간이기도 했고, 안거에 들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짚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40여 년 전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탁발하는 스님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부모님은 스님들이 찾아오시면 공양을 잘 차려 대접하고, 집안 이야기를 나누고, 가실 때에는 걸망에 쌀을 듬뿍 담아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탁발의 진면목이 아니었나 싶다.

며칠 전 땅끝 마을 지나 사구포의 어른들 네 분이 아침 일찍 찾아왔다.

“지난번 초파일 전에 우리 마을에 오셔서 집집마다 돌며 축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마을은 창녕 조씨 집성촌으로 옛날 미황사의 큰스님으로 계셨던 설봉스님의 후손 마을입니다. 얼마나 큰스님인지는 잘은 모르지만 그때 당시 우리나라의 가장 큰스님이셨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마을에서 축원해주신 덕에 마을 사람들이 스님의 훌륭한 인품과 행적을 비로 제작하여 마을에다 세우자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마을에 세울 설봉 큰스님의 비문을 수정하여 주십시오.”

뜻밖의 제안에 놀랍기도 했지만 고맙고 반갑기도 했다.

지난 봄 색다른 초파일을 생각하며 기획한 일이 연등을 들고 마을로 직접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 준비를 하다보면 전국 각 지역마다 시내에 연등을 내걸고, 화려한 연등축제를 열어 일반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마치 고려시대 때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던 연등회나 팔관회를 보는 것처럼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집집마다 갖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어 집에도 걸고, 절에도 가져와 걸었다는데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버린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절에서 준비한 등으로, 절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따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 하는 지금의 초파일을 조금 바꾸어보면 어떨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획한 것이 연등을 들고 마을로 찾아가기였다. 미황사가 속해있는 송지면에는 40여 개의 마을이 있다. 어느 동네를 선정할 지가 문제였다. 결국 300여 년 전 미황사에 사셨던 조선시대 열여섯 분의 대종사 중 한분으로 추앙받던 설봉스님이 태어나신 사구포 마을이 좋겠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사구포 이장님을 만나 지금 시점에서 연등을 달려고 하는 의미와 시기, 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더니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마을 안에는 종교가 다른 이도 있으니 축원을 원하는 집을 신청받기로 합의를 했다.

마실 도는 날 아침,

“이번 마실 돌기는 그 옛날 부처님과 스님들이 행하던 탁발과 같습니다. 다른 의미로는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시골마을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며 공부하는 시간이라 여기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민들과 함께 해주십시오.”

함께할 대중스님들께 그리 부탁드리고 길을 나섰다.

큰 깃발을 앞세우고, 연등을 든 스님 8명과 장구, 북을 앞세운 진법군고단 (풍물패)이 뒤를 따랐다. 그 뒤를 마을 사람들과 신도들이 등을 들고 따라 나섰다. 화려한 행렬은 아니었으나 소박하면서도 의미 있는 행렬이었다.

축원을 부탁한 집에 가면 쌀에 초를 꽂아 불을 켜둔 곳에서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는 축원을 한다. 평소 절에서보다 더 정성을 들여 온 마음으로 가정의 안녕을 빌어준다. 그리고 준비한 등을 처마에 달아주고 옆집으로 차례차례 찾아간다. 축원을 부탁한 스물여덟 집을 돌고 우물 두 곳에서 축원을 하니 날이 저물었다. 마을회관에 모여 절에서 준비한 밥과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반찬으로 다 같이 공양을 하고 이야기와 함께 준비한 공연을 했다.

가까운 마을에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일을 반성한다. 늘 찾아오면 맞이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틀을 깨고 직접 찾아오는 법도 있었다는 사실에 더없이 행복하다. 자연에 기대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삶이 주는 진한 향기 또한 온 몸으로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문득 20 여 년 전 일이 생각난다. 무주에 살 때인데 광주에 나왔다 막차를 놓치고 갈 곳이 없어 광주공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여름이라 공원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자에 앉았으니 한 사람씩 다가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더니 고맙다며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인데 마치 해결책이라도 가르쳐준 냥 고마워했다. 그때 그들을 보며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무얼 어떻게 채워야할지 크게 발심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수행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님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에누리 없이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탁발은 없어지고, 산사는 관광지화 되어버렸다. 이제 절의 물적 토대는 신도가 아니라 관광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이런 행사가 다른 절에서도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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