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39
나의 탁본이야기
 글쓴이 : 금강
조회 : 4,313  

탁본은 순간이며 영원이다.

미황사 부도전 설봉스님 부도 앞에 선다. 화려할 것 없는 소박한 부도. 손 내밀어 어루만져도 타박은커녕 빙그레 웃어줄 것 같이 친근하다. 크기나 조각솜씨가 전하는 편안함은 아니다. 언뜻 보면 민화 같고, 다시 보면 선적인 담박함이 담겨있는 문양 때문이다. 욕심을 내어 탁본을 떠본다. 검은 돌 꽃 한 송이 염화미소로 답한다. 검은 먹빛으로 피어난 한 꽃 송이 고고한 수행자를 마주한 듯하다.

지난 여름 부산에 갤러리를 개관한 도반스님이 탁본전을 열자며 연락을 해왔다. 주지 소임10년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까마득히 잊고 산 탁본. 다락에 쌓아둔 작품들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자니 나와 탁본의 인연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탁본과 인연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서울에서 중앙승가대학을 다니면서 학보사 일 하랴 종단개혁 일을 하랴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말았다. 그때 대학을 가기 전에 잠시 짐을 풀었던 미황사가 생각났고 지친 몸을 추스릴 겸 낙향을 결심하였다.

미황사에는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부도탑과 조선시대의 설봉대사를 비롯한 벽하, 연담대사 등 큰 선지식들의 비문이 모셔져 있다. 처음 미황사에 살 땐 그런 것들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 사는 동안 문화에 대한 안목이 조금 생긴 뒤라 예사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황사는 조선시대의 서산대사와 인연이 있는 절이다. 스님은 묘향산 원적암에서 열반에 들면서 손자 상좌인 편양 언기선사에게 의발을 전하며 삼재불입지처인 해남의 대흥사로 가라고 했다. 직계 제자인 소요 태능스님이 편양스님을 보호하며 대흥사에 법을 펼 수 있도록 마련하여 주었다. 그리고 본인은 대흥사에서 가까운 미황사로 자리를 옮겨 그 법맥을 이었다. 따라서 서산대사가 직접 살았던 절은 아니지만 그의 법맥만큼은 미황사에서 대대로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미황사에 짐을 풀고 나니 무엇으로라도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부도탑과 비문이었다. 비바람에 마모되어 원형을 잃어가는 것들을 보전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생각해낸 것이 탁본이었다. 탁본에 문외한인데다 혼자 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차에 절에 의탁하고자 찾아온 처사가 마침 탁본을 해보았다하여 그날로 함께 부도전의 탁본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미황사의 자료를 정리하는 측면에서 시작하였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탁본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세월을 한 순간에 찍어낸다 생각하면 전율이 느껴지곤 했다. 부처님의 성물을 대한다는 환희심도 컸으며 일생동안 수행과 보살도를 행하다 열반에 드신 스님들의 부도를 대할 때면 신심이 절로 났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분들과 대화 하는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요즘 스님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의 재주를 살려 취미생활을 하고, 포교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탁본이라는 취미는 항상 나를 옛 스님들과 대화하게 하고, 신심을 북돋아주기 때문에 은근히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탁본이란 그저 좋아서 하는 취미만으로는 오랫동안 계속하지 못한다. 약간의 사명이 있어야 계속 할 수 있는 작업이다. 탁본을 하고 몇 년 지나서 다시 찾아가 보면 본래 모습을 잃고 초라해져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원인은 산성비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성비의 폐해는 커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또 화재나 도난에 노출된 문화재들이 많아서 탁본하고자 마음을 내었을 때 계속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몇 년을 미친 듯이 매달리기도 했다.

탁본을 하는 데는 한지와 솜방망이, 먹물과 물 스프레이, 청테입, 옷솔, 줄자, 신문지들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탁본하기 좋은 종이를 찾아 한지 공장이나 지업사를 찾아다니거나 케케묵은 옛 한지들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탁본하기에 앞서 한 분 한 분의 부도에 맑은 차를 다려 올리고 삼배를 올린다. 묵은 먼지와 이끼를 걷어내는 일은 목욕을 시켜드리듯 정성을 다해야 한다.

줄자로 문양의 크기를 가늠하여 한지를 재단하고, 그 한지를 청테입으로 고정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물 스프레이로 고르게 물을 뿌리며 옷솔로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비문은 음각이 되어있는데다 홈이 일정하여 탁본을 하기가 쉬운데 부도의 조각은 양각인데다 그 깊이가 일정하지 않아 자칫하면 찢어지고 만다. 다행히 잘 밀착되게 한지를 붙였으면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이 기다리는 시간도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시간이다. 그 옛날 부도를 조성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돌을 다듬은 조각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천 년 전에 조각되어진 문양에서부터 적어도 200년 이상 된 조각 속에 깃든 진중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곤 한다.

붙여놓은 한지에 물이 90% 정도로 마를 즈음에 솜방망이에 먹물을 찍어 농도를 낮게 하기위해 또 다른 솜방망이나 신문지에 찍어본다. 나는 까맣고 진한 오금탁보다는 매미허물처럼 얕게 찍어내는 선시탁을 주로 한다.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연하게 찍어서 가운데로 천천히 전체적인 농도를 맞추어나간다.

그런 다음 순식간에 떼어 햇볕에 말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부도 표면에 스며들어있는 물기가 번짐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탁본을 직접하고 나면 섬세한 눈을 갖게 된다. 절집에는 지붕의 기와나 법당의 종이나 마당의 탑이나 석등에 그리고 스님들의 탑이나 비문 등 곳곳에 조각되어진 문양들이 많다. 조각들의 소재도 다양하다. 불보살의 모습에서부터, 사천왕상, 팔부신중상, 연꽃, 물고기, 거북, 설화에 나오는 방아 찧는 토끼 등 그 문양이 참으로 다양하다. 손톱만한 돌 위에 피어난 여덟 잎 연꽃까지 허투루 보는 법이 없어진다. 온 몸의 감각들이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심안을 갖게 해준다.

이제는 직접 탁본에 나서기보다 그 재주를 한문학당이나 템플스테이 교육용으로 쓰고 있다. 탁본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최고 좋다. 여름 한문학당에는 한문만으로 아이들에게 흥미를 끌 수 없으니 절집의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아이들은 단연 탁본 뜨기를 좋아한다.

탁본은 아이들에게도 세밀한 눈을 갖게 해 준다. 대웅전 처마 막새기와의 귀면에 관심을 보이고, 주초석의 거북이가 몇 마리인지 세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흐뭇하다. 제대로 회향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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