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15 17:42
걷기수행1
 글쓴이 : 금강
조회 : 5,267  

꿈의 산책로 걷기수행 1. (포행)

1260년 전 가을날 땅끝 마을에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도착한다. 그 배를 타고 온 검은 소를 앞세우고, 금함金函에 가득 들어있던 불상과 경전을 머리와 등허리에 지고 땅 끝에 사는 마을 사람 100여명이 인연의 땅을 찾아 나선다. 바닷길을 돌고 마을길을 건너 숲 울창한 나무 사이 길을 평화롭게 걷는다. 걷고 걷기를 한나절 남짓하니 빙 둘러선 바위가 읍소하듯 늘어선 신성한 땅에 당도한다. 미황사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평화로운 걸음의 끝 지점에서 미황사는 장대한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5년 전쯤 그 길을 거슬러 땅끝까지 가는 길을 찾아냈다. 다섯 시간을 열심히 걸으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땅끝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은 미황사 창건에 얽힌 옛 이야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수많은 스님들이 암자에서 암자로 이어진 길을 찾아 나섰으며, 마을사람들이 새해 첫 날 새벽에 정성을 담아 안고 부처님을 향해 걸었던 길도 그 길이었다.

대웅전 오른편 요사채를 지나 부도전 가는 길로 접어들면 동백나무 빼곡한 숲을 만난다. 11월에 피기 시작한 동백꽃이 이듬해 3월까지 피를 토하듯 붉게 물드는 숲이다.

차나무가 제법 자란 언덕길을 오르면 솔 향이 물씬 풍기는 소나무 숲과 시원한 바다풍경을 만난다. 남쪽 산에서는 작게 자라던 잡목들이 온난화 영향으로 앞 다퉈 자라다 보니 소나무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사라지는 솔수펑이를 보호하기 위해 매년 잡목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곳을 지날 때면 솔숲 사이로 참선 좌대를 몇 개 만들어 한가로이 앉아 쉬거나 명상을 하도록 의자를 마련해 두어야겠다 마음먹는다.

원효스님의 글에 ‘벽송심곡碧松深谷은 행자소서行者所棲’ 라는 말이 있다. ‘푸른 소나무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가 거처할 곳’이라는 뜻이다. 소나무와 수행자는 곧으면서도 넉넉한 성정이 닮은꼴이어서 쌍둥이처럼 잘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맑은 수행자 많은 도량 주변에 수행자 닮은 고고한 소나무가 많은 것은.

멀리 어란 포구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임진왜란 때 어란이라는 여인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또 시인 황지우가 탯줄을 묻었던 동네여서인지 별난 것 없는 포구이나 퍽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바다이다. 더 멀리 눈을 돌리니 호수 같은 진도 앞바다와 관매도의 해안선과 수평선이 어우러진다. 저기 까무룩 지는 노을 한 자락 펼쳐진다면 그 보다 더한 절창은 없겠다 싶은 설레는 바다이다.

거기서 조금 시야가 넓어지는 숲길을 걷다보면 산속에서 만나는 보물인 듯 반가운 부도전이 나온다. 부도전은 300 여 년 전 미황사에 사시던 스님들의 사리를 모셔 놓은 곳이다. 소박하고 작은 부도들. 방아 찧는 토기, 다리 꼬고 있는 오리, 물고기를 쫓아가는 게, 지붕에 올라간 다람쥐, 사리병 모양속의 연꽃 등 부도에 돋음새김된 문양들은 하나 같이 친근한 것들이다.

남부도전에는 스님들의 부도와 탑비가 26구, 서부도전에는 부도만 6구가 모셔져 있다. 한적한 가을날에 숲길을 걷다가 옛 스님들과 두런두런 법담을 나누고,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들려주고, 깨달음의 지혜도 빌릴 수 있는 곳이다. 세상 어디에 이런 깨달음의 길이 있겠는가.

여기서부터는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조붓한 오솔길이 시작된다. 낙엽이 푹신한 솜처럼 부드럽다. 따가운 가을 햇살도 반 쯤 가려진 고즈넉한 숲길. 아기 손처럼 작고 붉은 단풍잎들이 곳곳에서 유혹한다. 구지뽕, 다래, 어름, 개금 같은 가을 산열매도 많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산초 잎을 따서 입에 물고 가는 것도 멋스러운 일이다.

한참동안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걷다보면 문득 환한 세상이 낯설게 다가온다. 산길 중간지점에 큰 바위 너덜경이 나온다. 아마 산의 큰 바위가 그 옛날 벼락을 맞아 바위들이 부서져 내린듯하다. 바위 밑에 귀를 대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바위 너덜경에서 사람들에게 참선을 시킨다. 좌선대처럼 여기저기 자리 잡고 앉을 수 있는 너른 바위 덕분에 참선하기엔 맞춤한 곳이다.

절에서 천천히 한 시간 남짓 걷다보면 만나는 곳이어서 숲길 걷기의 1차 반환점이기도 하다. '참사람의 향기' 때에는 이곳까지 장호흡을 하고 천천히 걷다가 바위에 앉아서 20여분 참선을 한 다음 절로 돌아간다. 템플스테이를 오거나 수행하러 온 사람들은 이 곳 까지 아침 산책을 하러 온다.

나는 이곳까지를 '마음수행의 길'이라 부르고 'Dharma Road'라고 명명 하였다. 도심에서 살다가 미황사에 템플스테이를 와서 이곳까지 한번 걸었던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스님, 집에 돌아가 지내다 보면 미황사 생각이 나고, 뒤이어 너덜경까지 걸었던 기억이 자꾸 나요. 그러다보면 그 날 밤 꿈속에서 그 길을 걷는다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꿈의 산책로'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40여 년 전 조림한 측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 쭉 뻗은 길을 지나 바위계곡을 올라서면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신선이 사는 세계)’이라는 이백의 시가 절로 나온다.

빙 둘러 완도와 보길도와 진도가 둘러진 남해와 서해바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 도솔천이라는 하늘세계에 계시다가 내려오셨다는 그 도솔이 바로 이곳이다. 이름 한 번 가감 없이 제대로 지었다 싶게 여겨지는 별천지 하늘 세상이 펼쳐져 있다.

산길을 가다가 만나는 암자나 부처님은 반갑기 그지없다. 고려 때 백운화상이 기암괴석의 두 바위틈을 돌로 채워서 만든 한 평 남짓한 땅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름하여 도솔암이다. 신기하게도 암자 밑 바위틈 용담굴에 혼자 먹을 수 있는 샘물이 있어 지금도 식수로 사용하며 스님 한 분이 기도하며 살고 있다. 다시 산길과 임도를 따라 내려와 약수터에서 물을 먹고는 마을길과 저수지 길을 따라 걷는다.

마을길은 그 곳 사람들의 삶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을 마련해 놓았다. 마당에 널어놓은 붉은 고추와 자그마한 꽃밭, 텃밭에 심어진 배추와 시금치, 그리고 밭둑에 노랗게 익은 호박,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 문 앞까지 나와서 짓는 개들조차 정겹기 이를 데 없다.

도솔, 하늘 세상이 우러러볼 수 있어서만 도솔이겠는가. 인간사 희로애락 그 안에 도道와 깨달음과 꿈꾸는 하늘 세상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풀과 나무가 더불어 어우러진 숲을 걷는 그 길 위에 도솔이 있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미황사를 찾는 이들과 함께 도솔을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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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순 11-01-07 10:28
답변 삭제  
1월 템플스테이 '숲길 걷기 프로그램'을 미리 체험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구경 11-04-21 12:30
답변  
비가 촉촉히 내리고,쌀쌀한 날씨였슴에도 불구하고 적멸스님게서 앞장서 포행을 인도하여 주셨던 3월 참사람향기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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