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01 19:07
산을 지키는 한 그루 나무처럼, 한 곳을 지키는 아름다움
 글쓴이 : 금강
조회 : 907  
  글쓴이 : 금강스님     날짜 : 2011-10-28 09:31    
달마산(達摩山) 기슭 가을 미황사(美黃寺)의 해질녘, 멀리 진도(珍島)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미황사(美黃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의 부처님 세 분을 마지막으로 비추고는 사라진다. 이때는 하늘도 바다도 섬도 산도 부처님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해질녘부터 어둠이 오기 전까지는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미황사에 살고부터 생겨난 일이다. 미황사, 몇 번 걸망을 싸고 다시 찾아온 지가 십이년이 흘렀다. 

주인 없는 빈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구비 구비 미황사를 찾아왔었다. 말 그대로 땅의 끝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숲으로 둘러싸인 도량(道場)엔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고 음습(陰濕)하기만 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이 올라와서 인적 드문 절에 사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백 년 전 미황사가 망하게 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곤 했다. 

'시님 40명이 서산대사(西山大師) 진법군고(陣法軍鼓)를 칠라고 제주도(濟州道)에 갔드라요. 그란디 완도(莞島) 청산도(靑山島) 앞바다에서 태풍(颱風)을 만내갖고 다 죽어분께 미황사는 망(亡)하고 말았지라우.'

백년 남짓 주인없이 저 혼자 덩그마니 남아 기둥이 썩고 지붕이 내려앉던 미황사. 이 도량에 가람(伽藍)이 하나 둘씩 세워지고 사람들이 모여 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참배지가 된 데는 한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염주보다는 줄자가 들려진 날이 더 많아 눈에 띄는 것은 모조리 재고 다니는 현공(玄空) 스님이 바로 그이다. 

이십일년 전 스님은 미황사에 걸망을 내려 놓자마자 쌀포대와 집게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 도량 곳곳에 널려있는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사십 여 포대의 쓰레기를 치웠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대기를 미황사에 청소부 스님이 찾아 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묵은 쓰레기를 다 치우고 난 뒤 스님의 손에는 어느 결에 줄자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대웅보전의 기둥이며, 응진당의 서까래, 심지어 마루판까지 스님은 재고 또 쟀다. 그리고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거듭 심사숙고를 한 뒤 스님은 전체 도량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끼니때가 지나도, 밤이 되어도 스님은 방안에서 나오지 않은 채 구상을 심화하곤 했다. 한번 구상에 들어가면 완벽한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끊임없이 집중하면서 말이다. 

스님은 무엇 하나 허투루 처리하는 법이 없다. 돌멩이 하나 옮기는 데도 구상의 흔적이 역력히 묻어 있게 마련이다. 구상이 완벽하다 싶으면 스님은 틈나는 대로 전국의 유명한 절과 옛집들을 돌며 자료를 모아온다. 이때 줄자와 사진기는 필수품이 된다. 스님은 심지어 그 지방의 강수량과 기둥의 높이, 처마의 길이를 비교해보는 치밀함도 잊지 않는다. 

한곳에서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이런 치밀함과 철저함이 땅끝마을에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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