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8-16 16:51
함께 슬퍼할 때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
 글쓴이 : 금강
조회 : 1,126  

[특별 기고] 함께 슬퍼할 때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4.06.21 00:10 / 수정 2014.06.21 00:12
금강 스님
미황사주지
조계종교육아사리
 
 
어린 자식이 수장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전체가 ‘애끊는 슬픔’에 빠진 지 두 달이 넘었다. 문제는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이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나서도 여전히 기득권을 챙기고,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있다면 가망이 없다. 천지개벽과 맞먹는 변화를 시도해야 희망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슬퍼하는 일이다. 충분히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죽음을 치유하는 우리의 전통방식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었다. 마을에 초상을 당한 집이 있으면 모든 마을사람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함으로써 개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하도록 도왔다. 만약에 슬픔을 감추거나, 짐짓 모른 척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면 그 슬픔은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독소로 남아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슬픔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인정해야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미황사는 완도와 진도 사이에 길게 늘어선 해남의 달마산 중턱에 있다. 가끔 절 마당에 서서 먼바다로 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곳이 바로 사고 해역이다. 사고 뒤부터 노을 지는 그 바다를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다. 사고 소식을 들은 날, 차가운 바다에 떨고 있을 영혼을 생각하니 산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손을 보탤 요량으로 사고 다음날부터 진도실내체육관으로, 팽목항으로 뛰어다녔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 가지 문제를 생각해봤다. 이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돼 줄 것이다.

 첫째,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이다. 근·현대에 들어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극대화됐고 그 속에서 개인은 희생만 강요당했다. 성과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성장 사회를 그리워하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추악한 탐욕이 세월호를 잉태시킨 것이다. 배의 수명을 늘리고 증축하고 과적하는 위험한 줄타기 앞에 사람의 생명은 뒷전이었다. 돈이 사람의 목숨보다 앞자리를 차지한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사회로 접어들었으니 그때부터 세밀하고 안전한 사회시스템을 갖췄어야 한다. 개인의 삶의 모습도 안정되고 검약하고 진실하게 바뀌었어야 한다.

 둘째, 사고 이후 보여준 공권력의 무기력한 대처다. 사고 직후 공권력의 대처는 불교 경전의 ‘독화살의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자 친족들이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로 되었는지, 대나무로 되었는지를 알아야겠소. 또 화살 깃이 매털로 되었는지, 독수리털로 되었는지, 아니면 닭털로 되었는지 먼저 알아야겠소”라고 말한다면 그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온몸에 독이 번져 죽고 말 것이다.

 그동안 드러난 모습으로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치열한 노력은 찾기가 어렵다. 책임 소재와 경비로 사람의 생명을 저울질하느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놓쳤다. 정치는 사회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것이고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주 업무다. 그런데도 경제의 힘에 장악돼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시켜 주는 정치가 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곳에는 생명 존중도, 윤리도, 도덕도, 문화도, 역사도 설 자리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재난사고가 아니다. 한국의 급성장 신화가 빚은 우리 현대사를 대변해 주는 사건이다. 세월호가 한국 사회의 기조를 바꾸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정부는 저성장 사회에 맞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생명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공적 책무를 무겁게 느끼며 기본원칙을 지켜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셋째, 희생자와 자식 잃은 유족들, 가족을 잃은 유족들, 친구를 잃은 학생들, 무기력증에 빠진 사회의 치유다. 불교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직접적 이별의 시간을 49일로 보지만 간접적 이별의 시간은 100일, 사회적 시간은 3년으로 각각 생각한다. 이러한 시간은 단순한 의례적 시간이 아니라 치유에 걸리는 시간이다. 직접적인 희생자는 300여 명이지만 가족과 친지들의 상처, 그리고 연기적 관계에서 보자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상처가 치유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슬픔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마음껏 슬퍼하고, 지혜와 자비심으로 서로 다독일 필요가 있다. 함께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금강 스님 미황사주지·조계종교육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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